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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랑헤 잔당의 쿠데타가 무위로 돌아가고 사회주의자들이 처음으로 과반 정부를 구성한 1980년대 초반의 에스파냐에서, 반체제 인사들의 지난 삶을 다룬 『남쪽(El sur)』의 당대 사회문화적 위치는 승전보와 같았을 것이다. 더 이상 카타콤 신도들처럼 남몰래 어두운 극장에 모여 정답을 밝힐 수도 없는 알레고리를 해부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찾아오면 많은 예술가들은 작업물 안에다 자신을 과시하며 속내를 과감하게 표현한다. 그렇기에 『남쪽』의 조심스럽고 여전히 비유법에 집중하는 묘사는 동시대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독특하게 다가온다. 소박하고 말 없는 에스파냐 북부의 풍경들을 한 폭의 회화처럼 근사하게 배경으로 깔고, 영화는 프랑코 체제의 중기에 해당하던 1957년의 한 일상사를 담담하게 회고해 나간다.
영화는 에스파냐 내전에서 공화주의 진영에 섰던 한 남자가 프랑코 체제 아래에서 점차 몰락하는 상황을 다루는데, 서사는 그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면서도 그가 왜 그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의 딸을 주인공으로 삼아 영화는 거의 모든 상황 전개에서 남자에게 벌어지는 일을 딸의 눈과 감정에만 의존하여 설명하며, 남자는 그런 주관적인 이야기에서 자기발언권을 얻지 못한 채 피사체로만 작동한다. 따라서 그가 내전에서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가 왜 역사성을 정서상 극복하지 못하고 비극에 이르렀는지를 밝히는 작업은 추측과 상상의 공간에서만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서사관의 구축 과정에서 그가 내전 시기 활동했다던 남부는 미지의 이야기들을 포괄하는 기호로 작동한다.
전체적인 추락 서사에서 특이하게 다가오는 부분은 초반부 남자를 묘사하는 시퀀스들이다. 남자가 가족들과 이웃들로부터 명성을 얻은 이유는 그가 추의 움직임만으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다우징 능력을 쥐고 있어서다. 주변 인물들은 그가 행하는 기적을 마법이라 부르면서 그가 쇠퇴함에 따라 그 능력들도 잃어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인물들을 제작진들이 객관적으로 보는지 동조하는지는 판단의 영역이다. 그러나 현실계에서 보자면 남자가 하는 일은 모두 과학적 방법론을 따르지 않은 민간의 사이비 영역에 불과하며, 그에게는 처음부터 그런 마법 같은 것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 원래부터 거짓 선지자였던 남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세비야의 이국적인 정서가 비중 있게 다뤄지지만 그것은 오직 딸의 관념 속에서만 작동하고, 영화는 제목과 다르게 북부에 대한 내용이다. 그곳은 카르멘의 치마와 현란한 춤과는 다르게 무색의 눈이 소복이 쌓인 공간으로, 영화는 음악도 프로테스탄트적으로 사용해 엔리케 그라나도스(Enrique Granados)의 안달루스 무곡도 북유럽풍으로 들린다. 그러한 미니멀리즘은 당대의 우울한 분위기를 심화시키고 남쪽에 대한 환상을 키운다. 남자의 비중을 줄임으로써 관객은 1인칭 관찰자인 딸과 동일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이는 딸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에 관객을 동참시킨다. 그렇기에 영화는 승전보가 아니라 지침서로 작동하게 된다. 남쪽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제거했다는 일화는 그러기에 시의적절하다.
[2026/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