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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가 쓴 범죄소설들 속 인물들은 평소 마주치는 사람들에게선 볼 수 없는 변태 같은 속성이 다분해, 현실적인 상황을 그려내는 데도 불구하고 약을 피운 것처럼 몽환적이다.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을 각색한 앨프리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Strangers on a Train)도 이런 특징을 물려받아, 필름누아르 기법을 대거 차용했는데도 초현실적이어서 다 보고 나면 하나의 비논리적인 악몽을 꾸고 난 기분이 느껴진다. 본래 영화 각색 작업을 맡았던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는 히치콕과 거듭 갈등을 빚은 끝에 사실상 경질됐는데, 논리 퍼즐 이야기에도 거부감을 보였던 리얼리스트 챈들러가 이 작품을 보고 난 당혹감은 십분 이해된다.
 
영화의 가장 빼어난 점은 로버트 워커(Robert Walker)가 맡은 브루노 앤터니라는 인물 제시다. 메피스토펠레스가 현현한 것 같은 이 캐릭터는 정말로 극도로 반사회적 존재여서, 자기에게 장난을 치는 꼬마에게도 살벌하게 복수를 자행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교환살인이라는 논리를 깔고, 그는 자기 아버지의 목숨을 끊기 위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목 졸라 죽인다. 영화는 이런 순수한 악한의 자기과시쇼에 상당한 시간을 들여, 한 동물의 징그러운 화려함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서사를 흥미롭게 이어가는 데 성공한다. 테니스장 관중석이라든가 제퍼슨 기념관처럼,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들은 모두 브루노가 얼마나 위협적인 자인지를 시각예술의 힘으로 표현하는 것들이다.
 
극단적으로 개성 있는 브루노와 비교하면, 팔리 그레인저(Farley Granger)가 맡은 상대 주인공인 가이 헤인스는 그렇게 재미있지도, 매력 있지도 않은 인물이다. 아마도 평범한 서민층의 일원으로 태어났음에도 힘들게 노력해 나름대로 인정받는 테니스 선수가 된 듯하다만, 이 남자는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캐릭터들이 주위에 포진해 있음에도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하는 맹한 구석이 있다. 영화는 가이에게 극 중에서 어떠한 반도덕 행위도 허락하지 않으며, 출세욕으로 자신의 불륜을 합리화하는 사람인데도 그는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보호 받고 그 충실한 대변인이 된다. 역설적으로 그런 가이의 텅 빈 특성은 소시민의 모습들과 유사한 보편성을 지니기에, 브루노의 공포스러운 이질성에 맞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효과적이다.
 
결말의 회전목마 파트는 본래 헤이스 오피스에 순응한 결과물이겠다만 영화의 예술적 광기가 극한으로 치달아, 악몽은 깨기 직전의 순간이 가장 섬뜩한 것처럼 영화사의 대단한 명장면이 되었다. 잦은 편집들 사이로 괴기한 말 조각 장면들이 섞인 몽타주는 영화의 불편한 정서를 훌륭하게 매듭지으며, 여기에 가이를 밀쳐내려 브루노가 취하는 행동은 모호한 에로티시즘을 부여한다.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면 두 주인공의 숨 막히는 대결 너머로 보통 사람들의 희생이 너무 간과되는 것이 아니냐는 도덕적 질문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맨 마지막의 유머러스한 시퀀스는 그러한 윤리의식에 자신은 별로 얽매이지 않는다는 감독의 우회적인 답안일지도 모른다.
 

[202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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