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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처음으로 음성을 얻었을 때 그것이 앞으로 가져올 예술적 효과를 당대에 모두 예상하기는 불가능하였다. 유성 영화가 제작되던 초기에 사람들은 이 기능의 용도를 초보적으로만 인식하였으며,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중첩되면서야 사운드는 성공적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재즈 싱어(The Jazz Singer)』가 개봉한 1927년부터 한 5년 뒤까지의 할리우드 유성 영화들을 현대적 시선에서 감상하는 데에는 상당한 이해심과 인내력이 필요하다. 롤랜드 웨스트(Roland West)가 제작을 맡고 각본을 공동으로 썼으며 감독까지 한 1929년 작 『알리바이(Alibi)』는 이러한 시대경향성을 벗어나는 예외적 사례였으면 좋았겠지만, 그러기에 이 영화는 당대 영화의 문제적 특징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말하는 능력을 처음 얻게 되면서 어떠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물어보자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연극을 영상화하는 것이었다. 『알리바이』 역시 연극 각색물로, 상영 대부분의 시간 동안 등장인물들은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말을 주고받는다. 그러한 형식이 가져오는 밀폐성은 차치하고, 영화가 가져온 연극 서사부터 단점이 노출된다. 광란의 20년대를 반영하는 범죄물 줄거리는 갱단을 악으로 규정하고 이에 편승한 인물들에 징벌을 가한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선을 대변하는 공권력은 기실 악과 다름없는 행위들을 이어가는데, 영화는 이러한 교차가 가져올 복합성을 생성해 내는 대신 자각을 못 하는 듯한 연출을 이어가며 권선징악의 도식에 매몰되어 버렸다는 인상만을 남긴다.
그렇게 밀폐성과 도식 매몰은 영화에서 서사에 불필요한 장면을 계속 양산하는 문제를 낳는다. 후반부에서 밀정이 죽는 장면과 경찰이 갱단원을 거짓으로 저격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전자가 이미 규정된 윤리의식을 다시 노출하기 위해 들어간 늘어지는 신파극이라면, 후자는 서사에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데다가 오늘날의 기준에선 명백히 사법 정의에 어긋나는 행위의 제시다. 그럼에도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분량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듯이, 영화는 상당 부분의 길이를 차지하는 뮤지컬 장면들을 2군데 집어넣는다. 정말로 서사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이 뮤지컬들을 당대 관객들은 생경한 기술 과시에 감탄하며 봤을지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는 박물관 유물이 되어버렸다.
영화의 기이한 장점은 유성 영화의 속성과는 거리가 먼 부분에 있다. 연극적인 시퀀스들 사이의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카메라는 고정된 무대를 벗어나 비현실적인 상을 보여주거나 상징물을 극도로 강조하는데, 이는 무성 영화 시절 독일 표현주의자들이 쓰던 기법이다. 대사를 통해 인물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음에도 영화는 비효율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무성 시기의 방식을 사용하며 시각예술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불행히도 주로 초반부에 나타나며, 그런 장면들을 짧게 보여주다 영화는 이내 당대의 연극 성향에 무기력하게 편승한다. 그러나 효과적인 방법을 찾으려던 영화의 시도들을 보며, 영화예술이 보여줄 시각과 청각의 왈츠가 곧 올 것임을 눈치채기 어렵지가 않다.
[2026/01/27]